[단독] "피해 회복과 관련 없다" 성범죄자의 '1000만원 기부 영수증&#039…

작성자 이기자1
작성일 2020-05-30 09:03 | 2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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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증거가 명백한데, 피해자가 합의를 거절하는 경우. 가해자가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이 있다. 기부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시민사회단체에 기부해서 재판부에 선처를 구하는 식이다. 감형을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지만,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런 방법을 택하는 피고인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 재판부가 "그런 식의 기부는 감형에 아무 소용이 없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한 형량을 깎기 위해 1000만원을 기부한 피고인 A씨에 대해 "그건 감형 사유가 아니다"면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벌금 300만원을 피하기 위해 1000만원을 쓴, A씨는 아무 소용 없는 일을 한 셈이다.


피해자와 합의 실패⋯대신 선택한 방법 '1000만원 기부'

 

지난 3월 서울동부지법 피고인 A씨는 4번의 불법촬영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로 법정에 섰다. 서울의 한 빌딩 앞에서 피해자 3명의 신체를 허락 없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혐의였다.


증거관계는 명확했다. A씨가 불법촬영을 할 때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경찰에 신고했고, CCTV도 확보됐다. A씨 휴대전화에선 당시 찍은 불법촬영물이 증거물로 채택됐다.


A씨 상황에선 감형을 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피해자와의 합의였는데, 피해자 3명은 모두 합의를 거절했다. 그때 A씨가 선택한 방법이 기부였다. 그는 보육원 등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감형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6단독 손정연 판사는 "피고인은 피해자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체에 기부한 것"이라며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에 실질적 이익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벌금 3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과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2020년엔 어림없다

 

과거에는 이런 기부로 선처를 받은 사례가 꽤 많았다. 지난 2015년 서울동부지법, 2017년과 2016년 의정부지법, 2018년 서울중앙지법과 대전지법 등에서 "성폭력상담소에 일정 금액을 후원하는 등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선처를 해줬다. 그 결과 선고유예가 나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런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3년 전 전국 126개 성폭력상담소가 기자회견까지 열며 법원행정처에 "성폭력 가해자의 일방적인 기부를 감경 요인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변호사는 최근 서울신문에 "성범죄는 재산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후원을 양형 요인으로 고려해선 안 된다. 이를 인정하는 건 유전무죄나 마찬가지"라면서 "피해자 중심의 판결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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