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크라잉넛 반항 보단 버티기 그게 인디
작성자 라이더
작성일 2025-10-23 11:03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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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과 아카데미 회원들이 자선 골프대회를 열어 원이 넘는 성금을 모아 심장병 어린이를 치료하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23일 길병원에 따르면 최근 가천 CEO아카데미 총동문회와 함께 경기 안산시에서 연 골프대회에 의료진과 회원 등 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날 골프대회가 끝난 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가장 먼저 1000만 원을 기탁했습니다
이어 가천CEO아카데미 총동문회가 3100만 원 김진현 이에이트 대표 2000만 원 박명성 가천대 초빙교수를 포함한 팔공회 회원들이 1650만 원을 각각 내놓았습니다 김용일 채움파트너스 대표 최동철 현대에코텍 대표 이헌구 대림시스템 회장은 1000만 원씩 기부했습니다 길병원 교수들도 정성을 모아 1000만 원을 보탰다 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로 뛴 박찬호와 프로골퍼인 김영 유소연 윤채영 배우 정준호 등은 물품과 애장품을 기부하는 자선경매에 참가하면서 나눔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길병원은 이날 골프대회에서 모은 4000여만 원을 개발도상국의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치료하는 데 사용할 계획입니다
김우경 병원장은 심장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이를 돕는 나눔 행렬에 동참해 준 참가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고 말했습니다 앞서 가천대 길병원은 1996년부터 매년 몽골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등과 같은 의료 환경이 열악한 아시아 국가의 어린이를 초청해 무료로 수술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7개국 461명의 어린이가 치료받고 환한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인디는 한과 흥 서린 한국적 로큰롤 말달리자 는 6000번 불러 최고의 곡 전시 말달리자 공연 너트30 페스티벌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밴드 크라잉넛이 우리의 30주년은 인디 30주년과 같다 고 벅찬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흰 정원에서 잘 손질된 꽃이 아니라 우리만의 개성을 갖고 길거리에서 피어난 야생화였어요
크라잉넛의 시간은 한국 인디신의 시간과 공명합니다 1995년 서울 홍익대 인근 라이브 클럽 드럭 에서 태어난 크라잉넛은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인디 밴드다 크라잉넛 한경록은 지난 22일 서울 마포 KT G 상상마당에서 연 간담회를 통해 우리의 30년은 곧 인디의 30년 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른살 생일을 맞은 올해 크라잉넛은 특별기획 전시 말달리자 와 너트30 페스티벌 을 연다 멤버들은 자축 파티이면서도 인디에 바치는 선물 같은 느낌 이라고 말했습니다 크라잉넛은 한국형 펑크록의 시초격인 밴드다
드럭에서 활동을 시작 1996년 나온 데뷔 앨범 아워네이션 1 에 실린 말달리자 는 인디신을 대표하는 상징적 노래가 됐습니다 그 시절 청춘들은 크라잉넛과 함께 지구 끝까지 달렸고 불모지였던 국내 인디 음악계는 이 곡과 함께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멤버들의 오랜 고심 끝에 기획됐습니다 데뷔 30주년이자 한국 인디의 30주년이며 상상마당 20주년이라는 의미까지 더해 특별한 자리로 만들고 싶어서다 이에 음악과 미술을 넘나들며 밴드의 여정과 홍대 인디신의 역사를 조명하는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한경록 은 인디 음악은 한과 흥이 서린 한국적인 로큰롤 이라며 반항만 해서는 이렇게 오래 갈 수 없습니다 마전 양우 내안애 퍼스트힐 버텨냈다는 게 중요하다 고 강조했습니다
김인수 역시 인디 음악은 메이저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음악을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장르 라고 했습니다 밴드 크라잉넛 30주년 기념 전시 간담회 돌아보면 아득한 시간이었습니다 1995년 4월 5일 드럭에서 미국 록밴드 너바나의 보컬인 커트 코베인 의 1주기 추모 공연이 열리던 그날 크라잉넛은 세상에 나왔습니다 객석에 있던 멤버들이 난데없이 무대로 난입해 무대를 꾸미던 밴드가 기타와 앰프를 부수자 이들도 그 광란에 동참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던 혈기 왕성한 20대 청춘이었습니다
전시에선 그 현장도 재현합니다 한경록은 1995년 음악을 시작한 홍대 변두리 라이브 클럽 드럭은 굉장히 어둡고 축축하고 지저분했지만 매력이 조금 있었다 며 처음 공연을 연 이곳을 재현하기 위해 멤버 다섯명이 직접 그라피티 작업도 했다 고 말했습니다 1990년대 드럭의 입장료는 고작 3000원
이곳엔 단속 을 이유로 수시로 경찰이 들락거렸고 그때는 버는 돈은 족족 벌금을 내는 데 썼다 관객이 너무 없어 어떤 날엔 단 한 명의 관객만 두고 노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혁 은 여성 세 분이 공연을 보러 오셨다가 도중에 함께 화장실을 간 적이 있었다 며 그때는 그 대목에서 노래를 멈췄다가 돌아오셨을 때 다시 시작했다 며 웃었습니다 박윤식 은 에어컨이 있었다 트나 마나였습니다
덥고 습했다 며 쾌적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불편해도 해방구 같은 느낌이 있었다 고 돌아봤다 여럿이 함께 활동하는 밴드나 아이돌 그룹은 활동 중간에 멤버들이 들고 나지만 크라잉넛은 지난 30년간 멤버 변화 없이 한 길을 이어왔습니다 박윤식 한경록 이상면 이상혁 형제가 모여 밴드를 꾸렸고 1999년에 김인수 가 합류했습니다 밴드 크라잉넛 30주년 기념 전시 한경록은 우리는 한 명이 특출나게 잘생기거나 연주 실력이 좋은 멤버 구성은 아닙니다 메시나 호나우두 같은 스타가 있는 팀이 아니라 팀워크로 움직이는 팀 이라며 각자의 장점과 재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기에 멤버 변화 없이 오래 갈 수 있었다 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김인수는 조기축구와 비슷하다 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기흥역 엘리시아 트윈 다섯 멤버가 내놓은 많은 히트곡 중 말달리자 는 단연 최고의 곡입니다
1995년 발매된 이 노래는 홍대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이 곡의 인기에 1997년 5월 홍대와 명동에서 열린 거리 공연 스트리트 펑크쇼 에 크라잉넛이 등장했을 때 인디신은 땅속 깊숙이 잠들었던 용암을 뿜어냈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며 멤버들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게 된 계기 라고 했습니다
한경록은 말달리자 를 데뷔 이래 지금까지 몇 번 불렀나 세어보니 30년간 6000번 정도는 되겠더라 며 우리를 있게 해 준 노래 라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회식 후 귀가 시계를 재촉하는 밤이 깊었네 서정적 노랫말의 추억 찬가인 명동콜링 좋지 아니한가 매직서커스유랑단 등 주옥같은 명곡이 많다 룩셈부르크 주한대사관도 없던 시절 그토록 룩셈부르크 를 부르짖자 주한대표부가 크라잉넛을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업계에선 크라잉넛을 두고 데뷔 초창기엔 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하는 밴드였는데 한 해 한 해 놀랍도록 성장하면서 이제는 인디신의 큰형님이자 정신적 지주가 됐다 고 입을 모은다 한편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에선 크라잉넛의 미공개 소장품 신작 아트워크 오디오 영상 아카이브 등을 소개합니다
상상마당 지하 2층 홍대 라이브홀에선 크라잉넛과 김창완 김수철 장기하 잔나비 등 선후배 음악가가 함께하는 음악 축제 너트30 페스티벌 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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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마당 지하 2층 홍대 라이브홀에선 크라잉넛과 김창완 김수철 장기하 잔나비 등 선후배 음악가가 함께하는 음악 축제 너트30 페스티벌 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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